Critiques

삶적요소와 회화적 요소의 평형감각
서성록 (미술평론가)

최근 한국화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시선에 잡혀 온다. 수묵과 채색을 넘어 패턴 페인팅과 설치미술에 가까운 작품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고 이속에서 우리는 좀 더 적극화된 표현의지와 단순화된 한국화의 변화속도를 읽을 수 있다.
이만수는 이러한 한국화의 변화를 주도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그의 작품은 사실상 전통적인 동양화에 속하기 어려울 만큼 표현의 폭을 넓혀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부피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근래에 나타나는 한국화의 양식적 추이를 잘 반영 하면서 관심의 축을 자연세계가 아닌 이 땅위의 헐벗은 인간의 삶에 중점을 둔다.
먼저 그의 작품형식의 측면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이만수는 대상의 개관적 묘사 보다는 주관적 묘사를 더 중시한다. 그래서 그의 회화에는 자유로운 형상의 변형과 해석, 거침없는 붓의 운용, 인위적인 화면구성, 창조적인 색의 배합 따위가 탄력있게 구사되는 것을 볼 수있다. 물론 화면의 짜임새에 대한 주관적인 접근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점은 형상의 암시적 제시, 또 그로 인해 유도되는 상상적 작용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화면은 대담하고 시원하게 나뉘어져 새로운 시각체험을 불러일으키며 분채, 호분의 담담한 색깔은 깊이를 더하면서 평면의 심연 속에 견고하게 밀착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작가의 화면운용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나 그가 기도하는 작품 의도는 보다 훨씬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문제, 즉 인간의 삶에 관한 주시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은 ‘어둠상의 고뇌에 찬 인간’이라고 한다. 그의 눈에 현실은 무질서와 암담함, 사회갈등과 비진리의 억압된 공간으로 비춰진다. 가치관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불안한 미래는 현실의 위기의식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황에의 분명한 통찰은 그의 회화 속에 고뇌하는 인간, 그리고 소외받는 현대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칙칙한 어둠속에 갇힌 인간, 일그러진 삶의 표정, 감시와 구금상태의 놓임, 익명의 인간 등은 이렇듯 위기상황에 처한 우리의 존재론적 좌표를 보여주는 것의 다름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이만수의 작품은 흥미롭게도 작품의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을 동시에 중요시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 어느 것도 우월하지 않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 작가는 균형된 감각의 배분으로 예술의 두 차원을 결합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형식과 내용이 상호보완의 관계를 견지하면서 실질적으로 두 측면이 회화에서 결코 배재되거나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형식과 내용의 문제를 항구적으로 이질적이며 대립적인 것으로만 여겨왔던 우리 화단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시도로 높이 평가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형상이냐 추상이냐, 아니면 전통이냐, 현대냐, 형식이냐, 내용이냐 하는 이항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창조행위가 어떻게 하면 역사적 현실성에 충실하면서 회화의 내적 필요조건과 외부적 영향들을 연계시켜 통합적으로 접근해 갈 수 있느냐하는 실질적 사안의 구체적 해명을 능동적으로 실현하는 노력 여부에 있다. 말하자면 명분론 보다는 필연성에 입각하여 회화의 중추적 과제를 충족시켜 가야한다는 것이다. 이만수는 이런 우리시대의 과제를 작품의 주요 문제로 상정하면서 우리에게 삶의 요소와 회화적 요소에 대한 평형감각을 주입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